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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 남인을 따라가는 세력

vcchyun003 2025. 7. 3.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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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읽은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에는 같은 남인에 속한 이인몽과 정약용이 말다툼하는 장면이 나온다.
무엇 때문인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근기 남인과 영남 남인의 차이라고 언급되어 있었고, 이 대목이 이상하게도 기억에 오래 남았다.

남인이라고 한다면 다 같은 세력이라고 생각해서였나보다. 사실 남인이라는 당파의 존재도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게 되기도 했다.
#2.
정약용을 천주쟁이라고 고발한 것은 노론이 아니라 같은 남인 출신인 홍낙안이었다. 이승훈·정약용 등이 모여 천주교 서적을 공부한다고 고발해 정미반회사건을 일으켰다.
내 기억 속에 남겨진 <영원한 제국> 내용은 이 사건이 모티브였다는 것을 나중에 역사를 공부하면서 알게 됐다.
같은 남인이지만, 수도권을 근거로 하는 근기 남인과 영남을 근거지로 하는 영남 남인은 서학 문제로 크게 반목했다.
그래서 서학을 용인하고 연구한 남인을 신서파, 서학을 증오했던 남인은 공서파라고 부른다.
정조가 죽고 순조 시대에 대숙청이 일어났을 때 누구보다 앞장선 것도 이들 남인 공서파였다.
근기 남인은 이때 리더였던 이가환을 비롯해 정약용 등이 숙청되면서 정계에서 영원히 퇴출됐다.
#3.
흔히 정조 시대 남인이 권력의 한 축처럼 묘사하지만, 노론-소론에 비하면 압도적 열세였다. 정조가 몇몇 관직을 주면서 구색을 맞췄을 뿐이다.
세력을 잃으며 퇴조하는 집단엔 두 갈래 흐름이 나타난다.
새로운 흐름을 적극 받아들여 쇄신을 꾀하거려는 쪽이 있고,
반대로 정통에 집착해 옛 것을 통해 자신들의 존재를 확인받으려는 쪽이 있다.
정조 때의 영남 남인-공서파는 후자에 속했던 것 같다. 이들은 위기에 처할수록 더더욱 주자 성리학에 매달렸다.
#4.
얼마전, 여의도에서 증권업계에서 일하는 사촌형을 만났는데 그런 말을 했다.
"야, 네가 정치부 처음 갔을 때 나한테 해준 말 생각나? 민주당은 앞으로 30년은 한나라당 못 따라 잡는다고.. 이게 뭐야?ㅎㅎ"
정말 그랬다.
내 기억에 국민의힘 계열 정당이 가장 강력해 보였을 때는 이명박 정부 때의 한나라당이다. 내가 처음 정치부를 출입한 게 그때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기억은 미화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민주당을 출입하던 나의 눈에 당시 한나라당은 정말 '넘사벽'으로 보였다. 인적 구성이나 싱크탱크의 수준 등등이 민주당은 도저히 따라올 수준이 아니었다.
민주당은 여전히 민족과 87년 추억에 빠져있는데, 한나라당 쪽을 보면 실리와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민주당에선 '저런 부도덕한 사람을 대선 후보로 뽑냐'며 혀를 찼는데, 한나라당은 그러던 말던 이명박으로 압승을 했다. 그리고 과거보다는 미래에 대한 메시지를 내놨다.
(MB와 한나라당에 대해 다른 말을 하고 싶은 사람이 있겠지만, 잠시 참자. 정 하고 싶으면 본인 페북에..)
당시 한나라당은 진취적이고, 확장력이 컸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민주당을 압도하고 있었다.
나는 문재인 정부까지는 민주당을 보면서 사림과 영남 남인을 떠올리곤 했다.
#5.
이번 대선을 보면서 나는 일종의 기시감이 들었다.
예전에 본 장면인데, 주체는 바뀌어 있었다.
민주당은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는데, 국힘은 도덕성에 매몰되어 후보의 과거 미담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TV는 사랑을 싣고'라도 만들 참이었을까.
국민의힘 대선 후보 선출부터 이날 원내대표 선거까지 보면 양당의 상황이 완전히 바뀐 느낌이다.
시대 변화와 눈높이를 따라잡지 못한 채, 친미반공만 (20년 전 이명박 때보다 훨씬 많이) 반복해서 읊조리며, 같은 당 인사도 용인하지 못해 가짜보수-스파이-좌빨이라고 몰아붙일만큼 포용력과 확장력은 사라졌다.
여기에 사이비 종교처럼 미국에서 큰 거 온다 타령.. 명나라 황제만 바라보던 조선처럼 트럼프가 나서서 대선이 무효가 될 거라는 망상에 빠진 것도 쇠락기에 나타나는 전형적 현상이다.
국민의힘은 이제 18세기말 폐쇄적이고 고립된 영남 남인을 따라가려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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